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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소 추천 <낙산공원>의 소개, 역사, 시설 안내

by 쏘리치 202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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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번화한 도시 풍경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 있습니다. 낙산 공원입니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낙산 공원의 소개, 역사, 그리고 주요 시설에 대한 안내를 하겠습니다. 

낙산공원 소개

낙산공원은 대학로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공원입니다. 대학로 길을 따라 낙산공원의 언덕을 오르면 N서울타워, 한강, 그리고 주변 산들을 포함한 서울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들이 어우러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동대문 방면 코스는 흥인지문에서 한양도성길을 따라 올라가며 한적한 도심 속 숲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또 외부 성곽의 벽면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한성대 입구 방면 코스는, 마치 오랜 과거로의 여행 같은 느낌을 줍니다. 낙산공원의 '낙산'은 지형이 낙타의 등처럼 보인다 하여 '낙타산'이라고도 했으며, 낙산 일대에 왕실에 우유를 보급하던 목장이 있어 '타락산'이라는 이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주택과 아파트가 밀집되며 낙산의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자, 서울시는 낙산 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의 일환으로 낙산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여 2002년 7월에 낙산공원으로 개원하였습니다. 지금의 낙산공원은 서울한양도성과 푸른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취와 휴식을 느낄 수 있는 시민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낙산공원은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낙산공원에서의 서울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찾아올 만큼, 서울의 대표적인 야경 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낙산공원의 역사

낙산공원은 서울의 역사에 깊이 뿌리 두고 있습니다. 낙산은 과거 침략자들에게 대항하는 천연 요새의 역할을 하면서 서울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낙산공원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특징 중 하나는 서울한양도성입니다. 원래 조선시대인 14세기에 지어진 이 웅장한 성곽은 한때 도시를 둘러싸며 방어벽 역할을 했습니다. 공원이 조성되기 전인 1960,70년대에는 현재 낙산공원 부지에 판자촌과 시민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판자촌은 현재 낙산공원 중턱에 있는 주차창과 공원자리 윗쪽부터 이화동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즐비한 판자촌 탓에 그 당시에는 차마 산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판자촌 부지에 시민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발생한 대량의 철거민들은 광주대단지로 강제이주되었고, 일부는 자체적인 정비를 거쳐 '장수마을'이라는 형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1996년 시민 아파트마저 철거되고, 2002년 낙산공원의 1단계 공사가 시작되었고, 2008년에는 삼선동의 일부 구간에 2단계 공사를, 2010년에는 낙산의 정상에서 혜화문 구간에 이르는 한양도성의 동측 탐방로를 만드는 3단계 공사를 걸쳐, 드디어 낙산공원이 개원하였습니다. 오늘날 낙산공원은 서울한양도성의 일부를 보존하고 있어,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서울한양도성을 거닐며 과거 건축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서울 시내 중심, 그리고 대학로에서 가까운 낙산공원은 서울 사대문 안 시내와 남산과 함께 보이는 서울 야경으로, 현재는 저녁이 되면 외국인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북적이는 서울의 대표 명소가 되었습니다. 

낙산공원 주요 시설 안내

  • 서울한양도성: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수도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내사산(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연결하여 쌓은 성곽으로 그 길이가 18.2km에 달합니다. 한양도성길의 낙산 구간은 총 2.1km구간으로 혜화문에서 낙산을 거쳐 흥인지문(동대문)까지 이어집니다. 성곽의 옆길을 따라 걷다 보면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진 서울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 낙산정: 낙산공원 내 야경 명소 중 한 곳으로, 낙산을 복원하면서 새로 만든 정자입니다. 서울의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 전망광장: 제1전망광장부터 제3전망광장까지 3개의 전망광장이 있습니다. 체육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는 전망광장은 시민들에게 산책과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체육 시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비우당: 비가 오는 날이면 방 안에서 우산을 받쳐 비를 피했을 정도로 청렴했다고 알려진 조선 초의 청백리 정승 유관 선생의 가택입니다. 후세에 실학자 지봉 이수광 선생이 이곳을 물려받았는데,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비우당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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